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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독서

브로콜리 펀치, 이유리 : 환상과 현실 사이

by ProfitK 2023.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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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

브로콜리 펀치
브로콜리 펀치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이 톡톡 튀고 신선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최근에 읽은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도 충격적일 정도로 신선한 단편 모음집이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브로콜리 펀치도 그에 못지않네요. 환상과 현실 사이 어느 지점에서 독자들이 흥미를 느끼는지 젊은 작가들은 잘 아는 듯합니다. 뻔하지 않은 신선한 소설들이 많이 나와서 기쁘네요. MZ작가들의 성장이 기대됩니다. 저는 누군가 2022년 베스트 책으로 이 책을 뽑았길래 호기심이 생겨 읽게 되었습니다. 8편의 환상 단편 소설 모음집 브로콜리 펀치입니다.

 

브로콜리 펀치
이유리 지음
문학과 지성사 / 2021
p. 304

빨간 열매

"아버지는 자기를 화장하고 나면 남은 유골을 화분으로 만들어달라고 했었다."

첫 소설의 첫 문구입니다. 주인공은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무심코 그러겠노라고 대답하고 결국 실행에까지 옮깁니다. 화훼단지에서 볼품없는 빼빼 마른나무 한 그루를 사서 유골함에 흙과 섞어 심어버린 것이죠. 나무는 혼자 무럭무럭 자라 새 잎도 올라오고 줄기도 굵어지던 어느 날 "물."이라고 말을 합니다. 주인공은 깜짝 놀라지만 뭐야 이러면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랑 똑같다며 투덜거리며 나무가 된 아버지를 돌보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깜짝 놀랄 초자연적인 상황 앞에서 주인공이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이 소설은 리얼리티를 확보한 현실세계로 인식되더라고요.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쩐지 있을 법한 이야기로 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다른 단편들도 다 이런 분위기입니다.

돌이 자꾸 말을 걸어 돌과 친구가 된 남자, 5년 전에 죽은 남자친구가 손톱에 들러붙어 불현듯 찾아오기도 하고, 어느 날 투명한 젤리 상태가 된 여학생 이야기도 있습니다.

제가 정세랑 작가를 좋아하는 데 조금 비슷한 농도의 판타지입니다. 현실 세계에 판타지 한 스푼 추가한 정도의 소설들이라고나 할까요. 적당히 환상적이면서 현실감을 잃지 않습니다. 첫 문장만으로도 흡입력이 생기더군요. 가독성마저 좋아 금방 읽게 되고, 시간도 훌쩍 흘러가 버립니다.

 

브로콜리 펀치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단편에서는 복싱선수인 남자친구의 오른팔이 브로콜리가 되어 버립니다. 주인공은 그냥 담담하게 '병원 가자'라고 말을 합니다. 브로콜리 펀치가 진짜 브로콜리가 된 손으로 하는 펀치라는 뜻이었을 줄은 상상도 못 한 저만 깜짝 놀라고 맙니다. 그러고 저절로 이 소설에 빠져들게 됩니다.

나를 다시 안온한 상태로 되돌리는 역할을 맡은 어떤 기관이 열심히 일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원준은 너무 많은 괴로움을 자꾸만 억지로 삼키다 보니 그 기관이 고장 난 게 아닐까.
그래서 괴로움을 그대로, 그대로 받아들이다
결국 어느 날 아침 별안간 브로콜리가,
그렇다면 원준의 손이 낫고 나면 원준은 어떻게 하는 게 옳을까.

 

이렇게 비이상적이고 환상적인 일들이 책 속에서는 별일 아닌 듯 늘 그래왔듯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사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데 나만 모르는 거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생겨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착각은 나에게도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이 단편집에서 가장 좋았던 소설은 <이구아나와 나>입니다.

 

 

이구아나와 나

이구아나는 자기가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곧 죽을 것 같다며, 죽기 전에 소원인 멕시코에 가고 싶으니 수영을 가르쳐 달라고 말을 합니다. 수영으로 바다를 건너 멕시코에 있는 이구아나의 천국으로 가겠다며.

동해안에서 멕시코 해변까지는 만 하고도 천오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데 말입니다.

이구아나는 주인공이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에 데려다주겠다는 제안도 거절하고 결국 수영으로 멕시코에 도착합니다.

읽는 동안에 멕시코의 강렬한 태양과 해변이 떠오르면서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더라고요.

 

저는 여간해서 여행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며 집이 너무나 좋은 집순이입니다만, 책을 읽으면 항상 가고 싶은 곳이 생깁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이겠죠.

사고의 확장과 간접 경험, 동기 유발 같은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습니다. 특히 소설에서 더욱 많이 받습니다.

처세술이나 실용서적은 어쩐지 읽고 나면 그뿐이라 기억에 남지 않는데, 소설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입니다.

 

 

 

한줄평 : 정세랑 월드에 이은 이유리 유니버스가 시작되었다.

 

 

 
브로콜리 펀치
이렇게 골고루 재미있는 소설을 본 이상 품위 있는 표현을 내려놓고 약을 팔아야만 하겠다. 일단 한번 잡숴봐, 이 빨간 열매를. 구병모(소설가) 이상하고 웃긴 동시에 잘 다듬어진 소설, 다 본 뒤에도 그게 뭐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는 묘한 이야기 박솔뫼(소설가)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유리의 첫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능청스러우면서도 낯선 상상력과 활달한 문체”가 인상적이라는 호평을 받은 데뷔작 「빨간 열매」와 2021년 ‘올해의 문제소설’ 「치즈 달과 비스코티」를 포함해 ‘이유리 유니버스’를 알리는 8편의 소설이 수록돼 있다. 한국 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미 여러 기획에서 이유리의 이름을 눈여겨봤을 것이다. 데뷔 후 작가는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을 부지런히 발표해왔다. 『브로콜리 펀치』에서 이유리는 일상에 초자연적 사건과 비일상적 존재가 불쑥 침범하는 작가 특유의 세계를 소개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그것을 환대하는 인물들로 인해 환상과 현실은 밀착되어 분리할 수 없게 된다. 잔뜩 심드렁하지만 알고 보면 살짝 다정한 사람들이 깊이 억눌리고 엉킨 서로 마음의 매듭을 끊어주는 이야기들. “텍스트를 읽는다는 게 힘들고 마음을 먹어야 되는 일인데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지는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브로콜리 펀치』의 탐스러운 소설들을 입안에 넣고 굴리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복합적인 맛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유리가 그려내는 환상에, 그 자체로 이미 리얼리티를 획득한 세계에 우리는 이미 매료되었다. […] 지금-여기를 적나라하게 재현하는 한국 문학에 대한 통감으로 조금은 지친 마음을 안고 있던 독자들에게 이 책은 다시 한번 소설을 사랑할 수 있는 달달한 각성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유정(문학평론가)
저자
이유리
출판
문학과지성사
출판일
202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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