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마감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찾아서. 엔드 오브 라이프
<엔드 오브 라이프>는 일본의 신출내기 논픽션작가가 재택의료를 취재하면서 만난 방문간호사 모리야마 후미노리의 이야기를 엮은 책입니다. 모리야마는 방문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와타나베 니시가모 진료소 직원이었는데, 어느 날 불편한 몸 상태가 이상해 CT검사를 받고 췌장암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재택 의료 전문가의 재택 의료 치료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재택의료란 질병이나 부상으로 통원이 곤란한 사람 또는 퇴원 후에도 계속해서 치료가 필요한 사람, 자택에서 종말기 의료 받기를 바라는 사람 등을 위해 의사와 간호사가 그들의 집을 방문해서 행하는 의료시스템입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 자택 격리 및 원격 치료만 가능한 상태이고, 의사와 간호사가 직접 집으로 방문하는 전문적인 재택의료는 현재 시범사업 참여 지자체를 모집 중입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말기암 환자의 재택치료는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수요는 많을 테니 지금은 시범사업이지만, 점점 전국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환자가 된 방문간호사
후회하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는 하루하루가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이 빛나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게끔 도와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다면 고작 사흘이라도, 일주일이라도 인생에서는 정말 크나큰 시간일 테니까요.
같은 날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앞날을 걱정하느라 전전긍긍하지 말고 오늘을 살자라는 옛날부터 무수히 반복되어온 메시지를 우리는 언제나 잊어버리고 맙니다. 모리야마는 방문간호사 시절 겪어왔던 200명이 넘는 환자들의 임종을 모두 지켜본 베테랑 간호사입니다. 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던 간호사에서 말기암 환자가 되어버린 모리야마. 자연히 환자와 간호사 양쪽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게 됩니다.
방문간호사라면 '이런 음식은 몸에 안 좋은데'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걸 드실 수 있게 할지를 고민하고, '외출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마음을 이해하고 다가설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환자라면 그렇게 할걸, 이렇게 하지 말걸, 이런 생각하면서 후회만 하지 말고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사는 의미란 뭘까요?
통증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아무 생각도 못 하는 인생을 몇십 년씩 살아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나요? 통증을 참아내는 의미 같은 게 있을까요? 가르쳐주세요. 나한테 산다는 의미는 뭘까요?
척수경색으로 24시간 내내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나카야마 사토루는 통증을 없앨 방법이 없어 병원에서 퇴원해 재택치료를 합니다.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과 잠시도 사라지지 않는 통증으로 괴로운 이 환자는 원래 신체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전문가였습니다.
인생은 불공평합니다. 누군가 그랬죠.
"
러닝머신 발명가는 54세 사망
gym 발명가는 57세 사망
보디빌딩 챔피언은 41세 사망
세계 최고 축구 선수 마라도나는 60세 사망
하지만,
kfc 할아버지는 94세에
누텔라 발명가는 88세
담배제조사 윈스턴은 102세
아편 발명가는 116세에 사망합니다.
"
웃자고 하는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병에 걸리는 이유? 제비 뽑기나 다름없는 우연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유전의 원인도 있겠죠. 우연히 걸린 병에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이고, 인간은 의미 없는 불행을 감당해내지 못합니다. 죽을 때까지 24시간 통증을 느끼는 사람에게 사는 의미를 설명해서 납득시킬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나카야마도 가족들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아내가 있다고, 사랑스러운 딸이 있다고 해서 나카야마의 마음과 몸의 고통이 누그러들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이 환자는 자살을 하고 맙니다.
락트인 증후군에 걸린 엄마
아빠는 어떤 모습이든 좋으니 살아만 있어 달라고 그러더라... 어떤 상태가 되더라도 살아 있어 달라고. 외로운 건 싫대. 내가 없는 건 싫대.
작가의 어머니는 정신이 또렷한 채로 운동 기능을 잃어가는 락트인(감금) 증후군 상태였습니다. 재택의료라고 하면 의사나 간호사도 중요하지만 일상생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간병인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생활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고 합니다. 거동이 불편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머니를 가족 중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은 채 돌보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작가의 어머니는 입으로 음식을 섭취할 수도, 스스로 대소변을 볼 수도 처리할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엄마를 목욕시켜서 근육의 강직을 풀고 마사지하고 관절을 움직여주고,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변을 긁어내셨습니다. 무려 7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의 선택에 따라 가족이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된다면 어떨까?
길고 가혹한 투병 생활로 고통스러워하는 가족을 보면서도 계속 힘내라고, 견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말기암 환자이고 남은 건 고통스러운 투병뿐이라면, 내 죽음이 내게 선택권이 있다면 저는 쉽게 손을 놓아버릴 것 같습니다. 가족의 생명줄 역시 고통의 여부가 큰 결정사항일 것입니다. 기간이 정해진 여명이라면, 희망이 없다면, 고통뿐이라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나답게, 존엄하게 살기를 희망합니다.
삶을 마감하는 방법에 관한 레슨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모두 자기 손으로 정리해온 남편은, 여러분의 박수를 받으며 이 자리를 떠나기를 소원했습니다. 부디 여러분의 마음을 박수에 담아, 남편이 다음 수행의 길로 떠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약과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한 모리야마는 암이 진행되어 누가 봐도 병세가 심각해진 상황에도 수업을 진행합니다. 마지막 수업에서 "부디 환자를 대할 때는 낫지 않을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기를, 예후가 심각하더라도, 꼭 나을 사람이라고 믿고 힘이 돼주기를" 당부합니다.
모리야마는 결국 마흔아홉 살에 세상을 떠납니다. 모리야마의 아내 아유미는 잘 버텨준 남편을 위해 박수를 쳐달라고 부탁합니다. 멋있다고, 마지막까지 멋을 아는 사나이였다면서요.
모리야마가 마지막에 전해준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루를 보내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좋아는 걸 먹고 좋아하는 곳에 가기.
가까운 온천에 가고, 등산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그의 가족들은 아빠와의 이별을 준비합니다. 다가오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시간을 보내는 이도 많을 것입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습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기에 마음 가는 대로 살아도 된다고 모리야마는 말합니다.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마지막 순간까지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삶을 마감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것을요.
한줄평 : 내가 생각하는 삶을 마감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일상 루틴인 하루 일과를 다 마치고 잠자리에 누워 영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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