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전집 30. 야성의 부름 : 잭 런던
우월한 원초적 야수 벅
주인공 벅은 밀러 판사의 반려견이었습니다. 벅은 햇빛이 잘 드는 산타클라라 계곡의 어느 큰 저택에서 평화롭고 귀족적인 삶을 사는 4살 된 장원의 지배자였습니다. 커다란 세인트버나드 아버지와 스코틀랜드 셰퍼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65Kg 정도의 위엄 있는 풍모를 지닌 강한 개였습니다. 사냥과 야외 오락들로 몸을 단련하고 근육을 강화한 벅은 같은 집에 사는 다른 개들 뿐만 아니라 장원 안의 모든 인간들 사이에서도 왕이었습니다.
1897년 가을, 클론다이크 골드러시가 온 세상 사람들을 얼어붙은 북극으로 불러들이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정원사의 조수들 중 하나인 마누엘이 도박빚에 시달리다 벅을 썰매개로 몰래 팔아버린 것입니다. 문명의 한 복판에서 추방되어 갑자기 원시 세계 한가운데로 내던져진 것이죠. 팔린 곳에서 벅은 곤봉으로 두들겨 맞았고, 곤봉을 든 남자는 이길 수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그 일은 벅이 원시 법의 세계로 입문하는 첫걸음이었고, 점점 벅은 곤봉과 송곳니가 지배하는 냉혹한 원시 세계의 법칙에 타고난 신체와 뛰어난 두뇌로 영민하게 적응합니다.
그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의 도덕성이 마모되고 붕괴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생존경쟁이라는 무자비한 투쟁에서 도덕성은 허영에 불과하고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벅의 원초적 야수는 강력했고, 썰매개 생활은 그것을 더욱 키웠습니다. 벅의 뛰어난 두뇌는 본능으로 싸우는 개들 사이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결국 야비한 썰매개 대장인 스피츠를 죽이고 대장 자리를 차지합니다. 벅의 우수한 점은 법을 세우고 동료들이 그 법을 지키도록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동료 개들의 질서를 잡고 날마다 신기록을 경신하면서 벅의 능력을 보이지만, 하던 일이 끝나고 곧바로 다른 주인에게 팔립니다. 솔트워터 우편마차를 끄는 일은 매우 힘겨웠고 개들은 점점 지쳐갔습니다.
썰매 끈에 묶여 일하는 것은 그들 존재에 대한 최상의 표현이었고 그들이 사는 이유였고 그들이 기쁨을 느끼는 유일한 일이었다.
동료인 데이브는 몸이 아파 썰매를 끌지 못하면서도 제발 그 자리에 있게 해 달라고 눈으로 애원했습니다. 자꾸 쓰러지면서도 썰매 끄는 자리에 가서 서려고 했습니다. 혹사로 죽을 지경인데도 일을 거부당한 개가 슬픔을 이기지 못해 가슴이 부서졌다는 이야기, 너무 늙거나 부상당한 개들이 일을 하지 못해서 끈에서 풀려나면 곧 죽었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어차피 죽을 데이브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해 끈을 매어 주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한 인간을 향한 사랑
벅은 또 다른 주인에게 팔려갑니다. 이번에는 개썰매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찰스와 할입니다. 그들은 썰매에 짐을 싣는 법도, 개들의 식량 계산 법도 자신들이 무능하다는 것도 몰랐죠. 개들의 먹는 양을 줄이고 일은 늘리는 와중에 많은 개들이 죽어 나갑니다. 벅을 포함한 남은 개들은 걸어 다니는 해골에 불과했고, 곤봉으로 맞건 채찍으로 맞건 무감각해질 만큼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봄이 되어 발밑에서 흔들리는 얇은 얼음을 느낀 벅은 결국 일어서지 않기로 작정합니다. 일어나라는 매질에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때 손턴이 벅을 구해줍니다.
벅의 생명을 구해 낸 손턴은 그의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손턴을 향한 벅의 사랑은 "진실하고 열정적인", "미칠 듯이 광적인", "열병처럼 타오르는" 같은 표현으로 나타내 집니다. 손턴의 말이라면 절벽에서 뛰어내리려고도 하고, 500kg이 넘는 짐을 무리해서 끌어 보이기도 할 정도로 자신의 희생 따윈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강력했습니다.
야성의 부름
벅이 손턴과 지내며 점점 할 일이 없어지자 야성의 부름을 듣게 됩니다. 며칠씩 캠프를 벗어나 야생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살아 있는 동물들을 잡아먹고사는 야수로 살아갑니다. 벅의 노련한 수완은 늑대의 것이고 야생의 것이었기 때문이죠. 결국 벅은 야성의 부름으로 야생으로 돌아갑니다. 늑대 무리의 맨 앞에서 달리면서요.
세계문학전집 30
야성의 부름 / 잭 런던 / 권택영 옮김
민음사 2010
p. 182
주인공이 개인 소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야성의 부름만큼 멋있게 표현된 개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인간이라고 생각해도 멋있는 벅의 특징이 있습니다. 벅은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상상력, 부당한 대우에 대한 저항, 앞날에 대한 예견 능력까지 갖춘 완벽한 리더상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읽다 보면 저절로 인격을 부여하고, 멋있다고 생각하고 듬직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저는 리더의 자질과 역량 중에는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과 적절한 보상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부분은 개라는 특수상황 상 어쩔 수 없이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른 능력들이 부각되어 보입니다. 카리스마, 문제 해결 능력, 창의성, 확신과 행동력 등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벅보다 못한 존재들이 참 많죠.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장기적 시점으론 우상향 중임에는 틀림없으므로 나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봅니다.
벅은 사랑과 본능(야성)에서 갈팡질팡하며 왔다 갔다 하기도 합니다. 야생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다가 사랑하는 손턴에게 돌아가 지내기도 하는데요, 결국 손턴이 죽고 온전히 야생으로 돌아갑니다. 만약 손턴이 살아있었다면, 온전히 야생에서 생활했을까요?
야성과 사랑 중에 인간이라면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 고민해 보았는데, 극한 상황이라면 본능에 충실하겠구나 생각됩니다. 그러다가도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이 우리나라 민간인들에게 한 행동 중 하나인, 방안에 부모와 자식을 가두고 방에 불을 계속 지펴 바닥이 뜨거워지면 누가 먼저 다른 사람을 올라탈 것인지를 실험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만약 그 상황이라면 엄마가 자신이 뜨겁다고 아이를 깔고 앉을 수 있을까요? 때로 사랑은 본능보다 강합니다. 인간은 극한 상황에서도 이성을 지킬 수 있어 동물과 비교되는 것이죠.
이 책의 영화도 있다고 해서 검색해 봤는데 제목은 콜 오브 와일드입니다. 영화 속 벅이 책 표지 속 개와 사뭇 달라서 약간 실망했습니다. 늑대와 비슷한 시베리안 허스키가 연상되었는데 세인트 버나드에 가까웠습니다. 어쩔 수 없겠죠? 세인트버나드 아버지에서 태어났으니까요. 너무 원작 고증에 충실해서 오히려 실망한 케이스입니다.
설경과 오로라는 장관이라고 하니 영화는 꼭 챙겨보려고 합니다. 데이브 장면이 어떻게 연출되었을지 궁금하네요. 개들을 데리고 영화 찍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일반 관객인 저는 그런 골치 아픈 일은 생각 안 하고 마음 편하게 관람하겠습니다.
2020년에 개봉한 영화고, 디즈니 플러스에 있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한줄평 : 올해 읽은 고전 중에 가히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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