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시리즈 49. 아무튼, 노래 / 이슬아
아무튼 시리즈를 종종 읽습니다. 책 한 권을 가득 채울 정도로 무언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아무튼 시리즈를 읽으면 감탄하게 됩니다. 이렇게 좋아할 수 있다고?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이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다고?
지금까지 읽은 아무튼 시리즈는 피트니스, 쇼핑, 비건, 술, 떡볶이, 하루키, 달리기 정도입니다. 이번 아무튼, 노래까지 이제 총 8권 정도밖에 안 읽었네요.
이슬아 작가가 말하는 노래
노래방을 장악해보지도 않은 이슬아 작가는 왜 노래에 관한 책을 썼는가.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에 관한 글을 쓰지 않고 우사인 볼트가 육상에 관한 글을 쓰지 않듯, 가왕들은 노래에 관한 글을 쓰지 않습니다. 시란 두 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 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작가인 이슬아는 애매하게 탁월한 본인이 노래를 듣고 부르며 관찰한 타인과 자신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합니다.
노래에 관한 책이다 보니 노래방에 관련한 에피소드가 많이 나옵니다. 제 첫 노래방은 당시 노래방이 막 한국에 생기던 시절이었으니 90년대 중반이었나 아무튼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명절날 친척 어른들과 다 함께 커다란 노래방에 우르르 갔었죠. 어른들의 신명 나는 노래사이에서 어린 저는 유행가를 부르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노래가 시작되었을 때, 생각보다 박자가 빨라서 제 노래가 가사를 못 따라가던 경험이 떠오르네요. 그날 전 처음으로 제가 음치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뒤로 노래방은 제가 그리 즐기지 않는 장소가 되었고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 결국 노래방까지 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어쩐 일인지 노래 잘하는 이슬아 작가 역시 그렇다고 하네요.
어느 자리에서든 먼저 가보겠다고 말하며 일어난다. 일어나서 규칙적이고 고요한 일상을 향해 지체 없이 걷는다.
노래도 만드는 작가 이슬아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에서 돈을 받고 축가를 부르고, 목 선생님에게 노래에 관한 수업도 받습니다. 히트곡 제조법이라는 책까지 읽을 정도로 노래에 진심이더군요.
지금까지 다섯 곡을 만들었는데 그중 아무것도 히트를 칠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노래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가장 잘하고 싶은 일이 아니어서다. 그런 일은 자유를 준다. 즐거울 수 있는 만큼만 매달릴 자유 말이다. 글을 쓸 때는 그런 자유가 따르지 않는다.
잘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잘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껏 즐길 자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했던가요. 언젠가 이슬아작가님이 즐기며 만든 노래가 히트되는 날이 기대됩니다. 즐기지 못하는 글로는 이미 히트작이 수두룩하니까요. <아무튼, 노래>가 열 번째 책이라고 합니다. 이슬아 작가의 책을 모두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문체나 이야기가 마음에 듭니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로 알게 되어서 <일간 이슬아 수필집>, <부지런한 사랑>, 남궁인 의사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까지 열심히 읽었습니다. 오늘 소설 <가녀장의 시대>까지 주문한 상태이니 이 정도면 이슬아 작가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이슬아 작간의 책 중에서 베스트를 뽑자면, 아이들의 글 선생님을 하며 있었던 에피소드를 엮은 <부지런한 사랑>이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계속 더 좋은 글을 써 주기를 바랍니다.
남궁인 의사 선생님과 노래방에 같이 간 이야기도 이 책에 나옵니다. 비록 이니셜로 의사 NK라고 적었지만.
아무튼 의사 NK의 노래 실력을 "4차원의 노래를 2차원에 구겨 넣는다면 그런 소리가 날지도 몰랐다. 모든 멜로디가 하나의 음으로 들려왔다. 그는 오직 한 개의 음안에서 이게 최선이라는 듯이 노래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음치였다. 이 한마디를 저렇게 유려하고 탁월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작가는 역시 작가입니다.
자식을 키우는 건 영원한 짝사랑
내가 1절을 부를 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소리인 것처럼 듣고 있다. 복희가 살면서 해본 가장 미련한 사랑의 대상이 혹시 나일까 봐 걱정이다.
복희는 이슬아 작가의 어머니입니다. 부모의 이름을 그냥 복희라고 글에 씁니다. 친구의 할아버지도 동원이라고 쓰고요. 아버지 이름도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실제로 부를 때는 이름을 부르진 않겠죠. 전 새로운 표현이라고 생각했고 전혀 거부감이 없었는데 어느 리뷰에서 보기 안 좋았다고 적혀 있던걸 본 적이 있습니다. 이슬아 작가의 친구 가수 요조의 책에도 부모 이름이 그냥 나옵니다. (두 분이 친구라는 건 이 책에서 나옵니다) 친구는 닮는다더니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작법 기법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슬아 작가의 어머니는 복희이고 복희는 자식을 키우는 건 영원한 짝사랑이라는 말을 합니다. 나도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엄마에게 다 주지 못합니다. 내 아이 역시 나만의 짝사랑일 테 고요. 가끔 엄마들의 이야기는 놀라울 만큼 솔직하고 직관적입니다.
세월과 노래
어떤 노래를 들으면 내 유년시절로 돌아갑니다. 교복을 벗고~~ 로 시작하는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을 들으면 교복을 입고 있던 내가 떠오릅니다. 그때는 윤종신과 김현철을 무척 좋아했던 터라 그 둘의 노래가 나오면 밤에 라디오 듣던 기분이 됩니다. 순식간에 교복을 입은 내가 되었다가 짝사랑했던 남학생이 떠올랐다가 뒤죽박죽 마음이 휘저어집니다. 노래가 주는 시간과 시간을 이어주는 힘입니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또한 어떤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는지.
음악만 있으면 내 보잘것없는 하루도 bgm이 깔린 영화 속 한 장면이 됩니다.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한강을 바라볼 때 이어폰으로 들리는 노래 한 자락은 내가 영화 속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도록 도와줍니다. 이렇게 노래는 일상을 풍요롭게 해 주고 결국은 인생을 아름답게 해 줍니다. 노래 없는 드라마, 영화가 재미없듯 노래 없는 인생도 무척이나 지루하겠지요.
이슬아 작가는 노래를 사랑합니다. 노래가 작가를 사랑할 때까지 짝사랑을 하면서 점점 오래된 사람이 되어가겠다고 합니다. 오래된 사람이 되어간다는 말이 참 예쁩니다.
한줄평 : 아무튼 시리즈는 내가 이걸 엄청 좋아한다는 걸 보여주는 책인데 그런 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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